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나는 재택으로 할 일을 모색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놀이 겸 공부방을 시작하려 자격증을 준비했다.
TESOL(영어 가르치는 자격증), 논술, 수학, 미술, 영어 구연동화 등 융합 교육을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하려고 했다.
상가를 알아보다 냉난방 설치 비용이 들어 집으로 알아보았다. 사는 집 근처 테라스하우스를 얻었다. 집으로 구해서 필요한 교구 등을 준비해 놓고 필요한 가구와 책을 그곳으로 옮겼다.
이렇게 준비하고 시작하려던 시점에 코로나가 터졌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이들도 코로나를 두려워했다.
나 역시 내 아이를 다른 이들과 접촉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준비하던 일 역시 시작하기 두려웠다.
집은 이미 계약을 해서 월세와 관리비는 나갔다.
하려던 공부방은 못했다. 그래도 사는 집보다 넓고 다락방이 있어서 아이와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재택 일 중 컴퓨터로 하는 디자인 관련 일을 아이를 돌보면서 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단둘이 24시를 붙어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일하긴 쉽지 않았다.
가끔은 내가 편하려고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3세 때까지 TV를 안 보여주겠다고 TV를 없앴던 부부다.
육아 책을 읽던 중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라는 책을 읽고 미디어의 병폐를 알게 되었다. 이에 아이에게서 미디어 노출을 줄이려고 노력한 부부다.
핸드폰으로도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지내던 엄마였다.
그러던 중 아이 이모는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너무 차단하면 나중에 노출될 때 더 심하게 중독될 수 있어.’라고.
그 말에 우리는 TV를 다시 구매하여 최대한 조율하며 아이에게 가끔 TV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미디어 노출에 조심하던 내가 일을 하겠다고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아이를 앉혀 놓았다.
아이는 영상을 보지 않을 때는 엄마가 놀아주지 않아 혼자 놀며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쏟았다. 아이는 계속 엄마와 함께 놀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납기가 있는 일로 일을 해야 한다고 혼자 놀라고 강요했다. 아이는 심심해하며 가끔 내가 일하는 옆으로 와 나를 건드렸다.
일하던 중 아이가 툭 건드리면 하던 일이 틀어져 아이에게 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다.
그렇게 지내던 중 동네 엄마 중에 아이 교육을 내게 맡기고자 하는 이가 있었다.
내 아이와 단둘이 수업을 진행했다. 내 아이와 함께 수업하니 내 아이는 엄마를 선생님으로 인식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또 수업하면서 아이를 잡기 시작했다.
‘네가 수업을 방해하면 돈을 주고 수업을 하는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 거야. 엄마는 돈을 받고 아이를 맡고 있는 거야. 그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엄마 수업할 때 자꾸 장난치거나 방해하지 마.’
수업하면서 내 아이를 따로 불러 혼내는 횟수 역시 늘어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에 나는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고 혼내고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없이 계속 화를 내고 혼내는 엄마와 함께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아이에게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다.
또래와 어울려 사회화를 해가야 하는 시점에 또래와 떨어져 있었고, 두려움을 주는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나의 문제를 몰랐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아이 행동을 지켜보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아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는 여전히 심했으나 고립되던 사람들이 조금씩 놀이터에 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아이의 상태를 듣고 겨울이지만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보았다.
놀이터에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녔던, 친하게 어울렸던 언니가 있었다.
내 아이는 그 언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답답해서 ‘언니랑 놀아. 네가 친했던 언니잖아.’라고 권했다.
아이는 ‘엄마가 인사시켜줘. 쑥스러워.’라고 답했다.
나는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원래 이런 아이는 아니었다.
환하게 잘 웃고, 장난도 치고, 낯가림은 있어도 친한 이들과는 잘 어울리던 아이였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을까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아이에게 갔다.
‘연채야, 안녕!. 가율이가 너랑 같이 놀고 싶다는데 가율이랑 같이 놀아줄래?’.
아이는 반가워하며 ‘안녕! 가율아. 같이 놀자.’라고 답했다.
내 아이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술래잡기하며 놀기로 했다. 연채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그래도 내 아이는 연채만을 졸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인데도 오직 연채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한 아이에게만 놀자고 하고 있었다.
연채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도망치며 놀고 있었다. 술래잡기 놀이에 바빠서 내 아이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아이는 다시 내 곁에 와서 머물다 내가 ‘가서 놀아’ 하면 어쩔 수 없이 또 가기를 반복했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둘만 놀 때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는 내가 지켜보아도 문제가 있었다.
‘아이의 문제행동이 무엇 때문일까, 무엇 때문에 발생했을까?’를 남편과 계속 이야기 나눴다.
계속 생각해보니 내 행동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아이와 장시간 함께하며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화를 내는 엄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아이는 의기소침해졌고, 엄마에게 계속 혼을 나기에 더욱 소심해지고,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하며 ‘내가 문제였어. 엄마인 내가 문제였기에 아이가 문제가 발생한 거야. 문제인 내가 아이와 떨어져 있어야 할 거 같아.’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엄마인 내게서 아이를 떨어져 있게 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인 나도 마음이 편안해져야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에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아이가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운동을 물었다. 아이는 수영과 발레를 배우기를 원했다. 수영과 발레를 시작했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인라인을 시작했다.
저녁 시간은 아빠가 주로 아이와 놀아주었다.
엄마인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칭얼거리거나 뭔가를 함께하자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았고, 화를 너무 쉽게 냈다.
남편은 내가 작은 일에도 너무 격하게 화를 낸다고 했다.
나를 되돌아봐야 했다.
안녕하세요.
위 글은 제가 브런치스토리에 가족에 대한 글로 연재 중인 내용이 일부 입니다.
https://brunch.co.kr/@myviewsonmylife/66
내용이 길어서 모두 티스토리에 올리기엔 너무 긴거 같아서 일부만 공유해 봅니다.
오늘도 제 티스토리에 방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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