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 며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서로 아는 사이라고 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요즘 더욱 신뢰성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많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믿음은 더 없다.
가상공간에서 댓글등으로 이루어졌다가 어떤 모임 등으로 서로 대면을 하게 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그 역시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너무 겁에 질려 이럴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 더 소심해져 이럴 수도 있고.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선 관심 있는 분야의 대면 모임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조금은 안심을 하게 된다.
그래도 사람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사람을 자주 만나 겪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첫인상에선 너무 좋았던 그 누군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첫인상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진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근데, 지금처럼 모두 바쁜 시기엔 그런 사람과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도 쉽지 않다.
그 사람도 바쁘고 나도 바쁘니 그 사람의 진가를 알기까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다.
나 역시 진국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고..
하지만 절대적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사람을 알기 위해선 서로 시간을 들여야 알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깊은 인간관계를 즐기고 주변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쓰며 또 몇몇 연구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자유와 사회적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들은 최고 수준의 사회적 기술을 수행할 수 있다. 아이에게 부드럽게 대해야 할 때와 엄하게 대해야 할 때를 알고, 동료에게 부족한 점을 직설적으로 지적할 때와 그가 모르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도록 도움을 줘야 할 때를 아는 기술 말이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특정한 상황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요소를 몹시 잘 포착한다. 향기든 취향이든 감정적 떨림이든 말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 how to know a person, 데이비드 브록스 지음, 이경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중에서
나는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일까란 자문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