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또 길을 잃었다. 시작했던 나의 원대했던 꿈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풍선이 쪼그라든 상태로 바닥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느낌이다.
‘과정에서 즐기기로 했으면서 결과를 왜 바라고 있는 거지?’
그래, 나의 문제는 현재 결과를 바라고 있다.
머릿속에선 언제부터인가 상상의 내가 바라는 그 모습의 영상들이 흘러가지 않는다.
‘뭐지? 왜 이런 상태가 된 거지?’
‘나 자신이 욕심을 내고 있기에, 균형감을 잃었기에 영상이 흘러가지 않는 것일까?’
내 안의 덜 자란 나 자신이 욕심을 내고 또 두 손에 뭔가를 잔뜩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
뭘 잡고 있는 거지? 갖고자 하는 욕망, 빨리 갖고 싶은 조급함.
싹도 트지 않은 상태에서인데, 땅에서 씨앗을 파내고 ‘싹이 났니?’라고 묻고 있는 거 같다.
싹이 안 난 것을 확인하고 또다시 땅에 묻고 있다.
싹은 때가 되어야 나는데…. 내가 이렇게 안달한다고 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조급해졌지….
당장 무엇도 불편함은 없는데…. 삶을 간소화하면 유지하는 데 문제없는데….
어떤 두려움이 내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
뭔가 내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거 같다.
그러니 이렇게 조급함을 느끼며 빨리빨리 하며 결과를 독촉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 마음이 불편함으로 가득할 이유가 없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처음 바랬던 모습을 이루지 못할까 봐? 정말 그것이 두려운 것일까? 떠들었는지 이루어 내지 못할까 봐?
아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거 같다.
땅에서 분명히 이 씨앗은 자랄 것이다.
그 사실은 알면서 지금 내가 ‘싹아, 나라. 나라.’하면서 ‘싹이 돋아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억지로 나게 만들 태세다.
자연은 억지로 주어지지 않는다. 때가 되어야 한다.
조급함은 삶의 균형을 잃게 한다.
욕심만 앞서게 할 뿐이며 내 마음만 아프게 만들 뿐이다.
마음의 평정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할 거 같다.
초심, 단어로써 초심은 단 두 글자다. 근데, 이 단어를 쓰는 순간 ’초심으로 갈 수 있을까‘란 의문도 든다. 욕심이 내 안을 잔뜩 채워놓고 조급함으로 나를 닦달한다. 나를 닦달해도 내가 싹을 틔울 수는 없다. 씨앗이 땅속에서 기온과 물과 때가 되어야 싹이 틀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내 속에서 계속 질문을 한다.
’뭐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왜 이렇게 조급해졌냐고 뭐가 불안해서 이렇게 안달복달하며 나를 괴롭히는 거야? 왜. 왜. 왜. 왜 이런 상태가 된 거야? 뭐지? 뭐지?‘
이 불안감이 드는 나를 지워야겠다.
바꾸자 나를 바꾸자. 내 속에 있는 이 불안해하는 나는 누르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자. 웃고 있던 나는 어디 갔지?
자신감에 충만했던 초기에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던 나 어디 있지? 그 나를 다시 찾아 일으켜 세워야겠다. 아니면 그냥 다 무시하고 나를 다 지워버려야겠다. 그리고 나도 없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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