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는 웃었다. 뭐라고 안에게 어설픈 위로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나는 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거야’하고 항상 살았는데…. 그러면서 상대에게 맞춰주었던 나 자신이 문제였던 거 같아. 어느 순간 내가 없더라고.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잘 표현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정말 싫은 것도 그냥 넘어가길 바라더라고. 근데, 내 속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데 지쳤나 봐. 내가 더는 못하겠다고 터진 거 같아.“
수수가 알던 안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았다.
안은 원래 자신의 의견도 당당히 말했다.
자신감도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일도 즐겼다.
수수가 알던 안은 그랬다.
근데, 지금 안이 자신을 설명하는데 다른 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아니 새로 팀장이 오면서, 뭔가 마음이 정말 너무너무 답답했어. 사실, 일하면서 내가 일하는 사람들과 지내기도 힘들었어. 내가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계속 확인하고 있더라고. 그게 힘들어서 팀장도 못 하겠다고 했던 것인데…. 내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는 팀장과 불협화음이 자꾸 발생하니 그 역시 힘들더라고. 팀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팀장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힘들었어. 나는 그 팀장을 옹호해줘야 했고, 밑에 있는 친구들도 위로해줘야 했거든. 그들에게 팀장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사실 나 역시 그 행동에 불만이 있으면서. 내가 팀장을 믿지 못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겐 팀장을 믿고 따르라고 해야 했어. 나보다 후배인 사람들 앞에서 팀장을 같이 욕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팀장을 믿고 일하라고 했지. 암튼, 생각해보면 내가 문제였어.“
안은 계속 자신을 탓했다. 정확히 안이 문제였는지 수수는 잘 모르겠다.
안은 자신이 문제였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수수는 정확히 안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무엇을 안에게 탓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너무 자책하고 있다는 느낌만 받았다.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그 사람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분명 사람 관계에선 상호 작용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근데, 안은 자신만 탓하고 있었다. 수수는 안타까웠다.
안 자신을 그렇게 탓하고 몰아칠 정도로 안이 못난 사람도, 아니고 문제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수가 아는 안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그날 안의 이야기를 듣고 수수는 헤어졌다. 수수는 안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수수는 안과 헤어지고 몇 달 만에 안을 다시 만났다.
안은 새로운 일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부담 없이 해도 되는 일이고, 자신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고 안은 조금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약도 이젠 끊어간다고 했다.
점차 약을 줄이며 마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했다.
다행이다. 안이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수수는 생각했다. 일하면서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다들 열심히 하는 건지?
결과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회사의 발전을 위해? 수수 자신도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것인지? 나는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라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수수는 계속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은 자신이 저렇게 만신창이 될 때까지 무엇을 위해 일했을까?. 나는 이렇게 달리는데 뭐 때문에 달렸을까? 월급을 더 벌기 위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 나는 진정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에 대한 만족일까? 무엇에 대한 성취일까?‘
수수는 안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안은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오지 않았어. 부모님이 잘 지원해 주셨고, 학교생활에서도 어려움이 없었어. 성적은 항상 어느 정도 받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었어. 졸업하던 시점에 제대로 졸업하였어. 그리고 입사해서 회사에 다닌 거지. 나 자신을 생각해보니 어렵거나 힘겹게 산 적이 없더라고. 일도 내 만족을 위해 한 거 같아. 누가 등을 밀면서 잘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냥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해 왔어.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회사에서 일할 때 이해를 하지 못하기도 했어. 일 할 때 ’왜 놀아‘라고 생각했거든. 그냥 난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몰아갔어. 그리고 좀 지쳤던 거 같아. 이젠 놀려고. 나도 놀아보려고 해. 나 그동안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어릴 때도 학창시절도, 회사생활에서도. 난 노는 걸 몰랐더라고. 놀아 본 적이 없어서 노는 걸 몰라. 이제 정말 놀아보려고 해.‘
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수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놀 줄 아나? 노는 게 뭐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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